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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작

하이데거 철학의 현상학

by 청파란 2025. 4. 26.

 

하이데거의 철학은 현대 사상 가운데에서도 가장 난해한 것으로 꼽힌다. 그의 대표 저서인 『존재와 시간』은 읽는 이로 하여금 ‘과연 인간이 쓴 책이 맞는가’ 하는 의문을 품게 할 정도로 어렵다. 하이데거가 기존의 인식 체계를 철저히 벗어나, 완전히 다른 관점에서 세계를 바라보았기 때문이다. 그는 우리가 일상적으로 사용하던 개념어들의 의미를 재해석하거나, 전혀 새로운 용어를 창조하기도 했다. 그 결과, 기존 세계관의 틀 안에 머무른 채 이 책을 읽는 사람은 아무리 노력해도 그의 철학을 온전히 이해하기 어렵다.

기존의 서양 철학은 대체로 ‘마음’과 ‘물질’을 분리해서 사고했다. 물질은 객관적으로 존재하는 외부 세계를 의미하고, 마음은 주관적이고 내면적인 세계를 가리켰다. 그러나 하이데거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이 이분법적 관점을 버려야 한다. 그는 세상을 ‘현상’의 총합으로 파악했다. 여기서 현상이란, 우리가 보고 듣고 체험하는 모든 것, 즉 마음과 물질을 나누지 않은 전체적 경험을 뜻한다. 다시 말해, 외부에 독립적으로 존재하는 물질이 있고, 우리가 그것을 인식한다는 식으로 이해해서는 안 된다. 오히려 인간이 세계 속에 존재하면서 경험하는 모든 것 자체가 하나의 통일된 ‘현상’이다. 이러한 관점 전환은 전통적인 사고방식과는 완전히 다른 세계를 열어준다.

하이데거의 철학에서 ‘타인’이나 ‘자아’라는 개념도 전통적 의미와는 다르다. 그는 이를 ‘Dasein(다자인)’이라는 개념으로 설명했다. 다자인은 보통 ‘현존재’로 번역되며, 문자 그대로 해석하면 "거기에 존재하는 것"이다. 어떤 대상이나 객체가 아니라, 세계 안에서 스스로를 발견하고, 이해하며, 끊임없이 존재하는 방식으로 살아가는 존재를 뜻한다. 인간은 다자인으로서, 단순히 살아 있는 생명체가 아니라, 자신의 존재를 의식하고 존재의 의미를 탐구하는 존재다.

또한 하이데거는 인간을 "죽음을 향해 나아가는 존재"로 규정했다. 전통적으로 죽음은 생명의 종말이나 커다란 사건으로 여겨졌지만, 하이데거에게 죽음은 삶의 마지막 사건이 아니라, 인간 존재가 항상 의식해야 할 한계 조건이다. 죽음은 먼 미래에 일어날 사건이 아니라, 지금 이 순간부터 인간 존재를 규정짓는 본질적 요소다. 인간은 죽음을 의식함으로써 비로소 자기 존재를 진지하게 마주하게 된다. 하이데거는 이러한 시각을 통해 인간이 진정으로 자기 존재를 이해할 수 있다고 보았다.

하이데거가 구축한 이러한 독특한 세계관은 ‘현상학’이라는 철학적 방법론과 깊은 관련이 있다. 현상학은 에드문트 후설이 창시한 사상으로, 사물의 본질을 ‘현상’을 통해 탐구하려 한다. 기존의 철학이 개념이나 이론을 통해 세계를 설명하려 했던 것과 달리, 현상학은 우리가 직접 체험하는 것을 있는 그대로 분석하려 한다. 하이데거는 후설의 현상학을 더욱 급진적으로 발전시켜, 인간 존재 자체를 ‘현상’으로 접근했다.

현상학을 이해하기 쉬운 예시를 들어보자.
아침에 커피를 마시는 순간을 생각해 보자. 전통적인 사고방식이라면 "커피라는 물질"과 "그것을 맛보는 나의 주관적 경험"을 구분할 것이다. 하지만 현상학은 이 둘을 나누지 않는다. 커피의 따뜻함, 쓴맛, 향기, 손에 닿는 컵의 감촉까지 하나의 통합된 경험이다. 현상학은 이렇게 우리가 ‘살아내는’ 경험 전체를 분석하는 철학이다.

하이데거의 철학은 후에 ‘실존주의’와도 깊은 연관을 맺게 된다.
실존주의란, 인간 개개인의 존재와 자유, 불안, 책임 같은 문제를 철학의 중심에 놓는 사상이다. 대표적으로 장 폴 사르트르, 알베르 카뮈 등이 실존주의 철학자로 잘 알려져 있다. 이들은 인간 존재를 철저히 개별적이고 자유로운 것으로 보았으며, 삶의 의미는 외부에서 주어지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 만들어 가야 한다고 주장했다.

현상학과 실존주의는 공통점과 차이점을 모두 가진다.
공통점은, 둘 다 기존 철학의 추상적 이론 체계에 반발해 인간의 구체적 경험과 존재 자체를 중시했다는 것이다. 개념적 설명이 아니라, 살아 있는 체험과 실존을 분석하려 했다. 하지만 차이점도 존재한다.
현상학은 인간 경험을 '있는 그대로' 기술하고자 한다는 점에서, 가치판단을 최대한 배제하려 한다. 반면, 실존주의는 인간의 자유와 책임, 불안, 고독 같은 감정적·윤리적 문제를 깊게 다루며, 인간이 의미를 창조해야 한다는 실천적 태도를 강조한다. 다시 말해, 현상학은 '어떻게 경험하는가'를 묻고, 실존주의는 '그 경험을 통해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를 묻는다고 할 수 있다.

이처럼 하이데거의 철학은 전통적 이분법을 넘어선 사고를 요구하며, 인간 존재를 더욱 근본적으로 성찰하도록 이끈다. 그의 철학은 현대에 와서도 여전히 심오한 질문을 던지고 있으며, 현상학과 실존주의 모두에 깊은 영향을 끼쳤다.


하이데거 철학이 현대사회에 주는 가장 큰 교훈은, '진정한 존재'를 자각하라는 요청이다. 현대인은 빠른 변화와 소비, 정보 과잉 속에서 자기 자신을 잃어버리기 쉽다. 우리는 끊임없이 타인의 기대에 맞추거나 사회적 규범에 휩쓸리며 살아간다. 하이데거는 이러한 삶을 '비진정성(unauthenticity)'이라고 지적했다. 그는 인간이 죽음을 향하는 존재임을 자각할 때, 비로소 자신의 삶을 스스로 책임지고 진정한 방식으로 살아갈 수 있다고 강조한다. 죽음을 두려워하거나 회피하는 것이 아니라, 유한성을 깨닫고 남은 시간을 더 깊이 있게 살아야 한다는 것이다. 이 교훈은 현대사회에서도 여전히 유효하다. 수많은 선택과 압박 속에서도, 우리는 타인이 만든 기준이 아니라 자신의 본질을 기준 삼아 삶을 선택해야 한다. 하이데거는 우리에게 물었다. "너는 과연 너 자신의 삶을 살고 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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