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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작

에리히 프롬 『사랑의 기술』

by 청파란 2025. 4. 30.

 

사랑은 본능이 아닌 기술이다

많은 사람은 사랑을 아주 자연스러운 감정이라고 생각한다. 마치 숨을 쉬거나 걷는 것처럼, 사랑도 누구나 본능적으로 할 수 있는 일이라 믿는다. 에리히 프롬은 이러한 생각이 위험하다고 지적한다. 그는 우리가 사랑이라는 감정을 경험할 줄 안다고 해서, 그것을 잘 실천할 줄 아는 것은 아니라고 말한다. 사랑은 단순히 느끼는 감정이 아니라, ‘기술’이며 따라서 배우고 연습해야 하는 영역이라는 것이다.

대부분의 사람은 사랑을 감정의 문제로만 본다. 그래서 연애를 시작할 때도 ‘사랑할 줄 아는가’보다는 ‘어울리는 사람을 어떻게 고를 것인가’에 더 초점을 둔다. 어떤 이는 이상형이 나타날 때까지 기다리고, 어떤 이는 이상형을 찾기 위해 끊임없이 사람을 만난다. 이 과정에서 사랑은 점점 선택의 문제가 되고, 그 대상은 감정이 있는 인간이라기보다는 마치 소비할 수 있는 ‘제품’처럼 취급된다. 우리가 좋아하는 노래나 영화처럼, 어떤 사람을 사랑할지 결정하고, 그 사랑이 마음에 들지 않으면 쉽게 포기하는 것이다.

프롬은 이처럼 사랑의 대상을 ‘선택’하는 데에만 집중하는 태도는 사랑의 본질을 놓치게 만든다고 본다. 진짜 중요한 것은 ‘누구를’ 사랑하느냐보다 ‘어떻게’ 사랑하느냐다. 사랑은 단순한 호감이나 욕망이 아니라, 대상에 대한 깊은 이해와 실천에서 비롯된다. 그는 "사랑은 어떤 감정의 결과가 아니라, 어떤 태도의 시작"이라고 말한다. 사랑을 배운다는 것은, 결국 상대를 이해하고 존중하는 법을 배우는 것이며, 그 사람의 욕구와 감정을 세심히 살피는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프롬은 사람들이 흔히 찾는 ‘연애 지침서’에 대해서도 회의적인 시선을 보낸다. 많은 사람이 연애에 도움이 되길 바라며 이런 책을 펼치지만, 실제로는 상대를 진심으로 이해하는 방법보다는 자신을 어떻게 매력적으로 보이게 할 것인가, 어떻게 하면 좋은 사람을 만날 수 있을까 하는 데에 더 관심이 많다. 그러나 외적인 매력이나 말솜씨는 진정한 사랑의 지속에는 큰 역할을 하지 못한다.

사랑을 제대로 하기 위해서는 단순한 관심 이상이 필요하다. 먼저 상대를 이해하고, 그의 감정, 사고방식, 가치관, 습관 등 많은 부분에 주의를 기울여야 한다. 이 과정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며, 오랜 시간과 노력이 필요하다. 또한 남성과 여성 사이에 존재할 수 있는 차이점, 성격과 배경에서 오는 다양한 차이들도 함께 공부해야 한다. 그래야 진정으로 ‘사랑하는 법’을 배울 수 있다.

프롬은 사랑이란 ‘주는 것’에서 시작된다고 강조한다. 일반적으로 베푼다는 행위는 ‘내가 잃는 것’이라는 느낌을 준다. 그러나 진심으로 사랑하는 사람에게 무언가를 주는 것은 결코 손해가 아니다. 오히려 그것은 자신이 가치 있는 존재임을 느끼게 해 주며, 사람에 대한 신뢰와 자신감을 심어 준다. 사랑에서 베풂은 무언가를 빼앗기는 것이 아니라, 더 큰 풍요로움과 연결로 이어지는 창조적 행위이다.

결국 사랑은 단지 연애에 국한된 문제가 아니다. 사람과 사람 사이에서 더 잘 살아가기 위한 삶의 기술이기도 하다. 상대를 이해하고, 주고받으며 관계를 유지하는 능력은 사회 속에서 건강하게 살아가기 위한 기본적인 조건이다. 그러므로 사랑을 잘하려면 단순한 감정에 기대기보다는, 마치 예술가가 붓질을 연습하듯이 일상의 경험을 통해 사랑을 연습해야 한다.

프롬은 말한다. "사랑은 기적처럼 다가오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그것은 오랜 시간의 인내와 이해, 배려와 실천 속에서 비로소 자리를 잡는다." 우리가 진심으로 누군가를 사랑하고자 한다면, 그 시작은 연습과 배움이다. 사랑을 ‘받는 것’이 아닌 ‘주는 것’으로 인식하고, 상대의 사람됨을 깊이 있게 이해하려는 태도에서 출발할 때, 비로소 사랑은 우리 삶에 온전히 뿌리내릴 수 있다.

사랑이 단지 연애에만 국한되지 않는다는 점은 프롬이 구분한 사랑의 여러 형태를 통해 더 명확히 드러난다. 그는 사랑을 ‘형제애, 모성애, 에로스, 자기애, 신에 대한 사랑’으로 나누며 각각의 사랑이 고유한 특성과 태도를 지닌다고 보았다. 형제애는 인간에 대한 보편적인 애정과 책임감에서 비롯되며, 인간 전체에 대한 연대감과 연결되어 있다. 모성애는 무조건적인 보호와 책임의 감정이자, 주는 것에서 만족을 얻는 성숙한 사랑이다. 에로스는 흔히 연인 간의 사랑으로 알려진 육체적·감정적 결합의 욕망이지만, 프롬은 에로스가 깊이 있는 연결로 발전하지 않는 한 쉽게 소모적이고 일시적인 감정에 머물 수 있다고 경고한다. 자기애는 이기심이 아니라, 자기를 존중하고 돌보는 능력이며, 신에 대한 사랑은 인간의 유한함을 넘어서는 초월적 사랑을 의미한다. 이처럼 다양한 사랑의 형태를 이해하면, 우리는 인간관계를 훨씬 더 풍요롭고 입체적으로 받아들일 수 있고, 사랑을 단일한 감정으로 축소하는 태도를 넘어서게 된다.

이러한 다양한 사랑의 기초가 되는 것은 결국 ‘자기 자신을 사랑하는 능력’이다. 프롬은 자신을 온전히 사랑할 줄 아는 사람이 타인을 진정으로 사랑할 수 있다고 강조한다. 여기서 말하는 자기애는 단순한 자기중심적 태도나 자만심이 아니다. 자신의 감정, 한계, 욕망을 인식하고도 그것을 있는 그대로 수용하는 태도이며, 자신을 존중할 줄 아는 내적 안정감이다. 자기를 사랑하지 못하는 사람은 타인의 애정을 갈구하거나, 그 애정을 확인하려는 방식으로 관계를 왜곡하게 된다. 반면, 자신을 이해하고 존중할 줄 아는 사람은 상대와의 관계에서도 의존하거나 지배하려 하지 않고, 건강하고 자율적인 방식으로 소통할 수 있다. 사랑은 자기 파괴적인 헌신이나 감정의 몰입이 아니라, 나 자신과 타인을 함께 존중하는 태도에서 시작되어야 한다. 그런 면에서 사랑은 자아의 성숙과도 깊은 연관이 있다.

오늘날 우리가 살아가는 사회는 사랑을 점점 더 빠르게 소비하게 만든다. SNS나 데이팅 앱은 사람 간의 만남을 손쉬운 선택과 빠른 판단의 대상으로 만들며, 사랑을 하나의 경험 상품처럼 여기는 문화가 확산하고 있다. 이런 환경 속에서는 깊은 관계를 위한 노력보다는 즉각적인 설렘이나 매력에만 집중하게 되고, 관계가 어려워지면 쉽게 ‘다음’을 선택하게 된다. 프롬이 말한 ‘사랑의 기술’은 이런 시대일수록 더 절실하게 필요한 삶의 기술이다. 감정에만 의존하지 않고, 진심 어린 이해와 꾸준한 실천을 바탕으로 하는 사랑이야말로, 사람을 진정으로 변화시키고 성장하게 만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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