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일 내내 바쁘게 일하고 맞이하는 귀한 주말. 그런데 요즘은 몸살 때문에 그 소중한 시간을 허비하는 일이 잦아졌다. 20대 후반이라서일까. 면역력은 떨어지고, 약을 먹어도 감기가 쉽게 낫지 않는다. 열에 시달리며 뒤늦게 후회한다. '새벽 늦게 자면 안 됐는데', '힘들어도 주 3일은 운동을 해야 했는데.' 그제야 깨닫는다. 어른이 되면 일찍 자는 이유를, 30을 넘어가면 운동하지 않으면 버티기 힘들다는 말의 의미를 막연히 알고 있던 사실들을 온몸으로 체화하는 요즘이다.
슬픈 일이다. 처음 보는 사람의 "학생이에요?"라는 물음에 기분이 좋아지기 시작했을 때부터였을까. 나이 강박 없다고 자부하던 내가 나이에 연연하게 된 것이. 사회적, 내면적 성장은 언제나 환영하지만, 신체적 노화는 늘 두렵다. 하지만 이런 두려움은 늘 같은 결론에 도달한다. 자연의 섭리라 어쩔 수 없다는 것. 내가 통제할 수 없는 일은 걱정하지 않는 것. 지금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하는 것. 스물여덟이 되어 달라진 점은 이렇게 금방 납득하고 묵묵히 행동한다는 것이다. 삶이 그리 복잡하지 않다. 생각이 너무 많아 괴로웠던 어린 날이 전생 같다.
스물셋에 찾아온 죽고 싶은 절망 속에서 나는 삶의 의미를 찾고 싶었다. 삶의 의미가 없다면 앞으로 살아갈 용기를 얻지 못할 것 같았다. 그렇게 자신에게 묻고 또 물어 찾아낸 삶의 의미는 웹툰이었다. 『죽음의 수용소』의 빅터 프랭클이 자신의 연구를 끝마치겠다는 일념으로 아우슈비츠에서 버틸 수 있었던 것처럼, 나에게는 웹툰이 그런 존재였다. 내가 웹툰을 그만 그리면 웹툰 속 인물들의 삶은 멈춘다. 그들의 결말을 지을 수 있는 건 나뿐이라는 생각이 계속 살아서 웹툰을 그리는 원동력이 됐다. 그런 마음으로 3년간 그림에 매달렸지만, 어느 곳에서도 정식 연재로 데뷔하지 못했다. 정신건강은 점점 나빠졌고, 경제적으로도 힘들어졌다. 결국 웹툰으로부터 튕겨 나가듯 그만두고 아르바이트를 시작해야 했다. 지난 3년간 웹툰은 나의 전부였다. 웹툰만 바라보고 몰두했기 때문에 다른 것들을 끼워 넣을 틈이 없었다. 하지만 정신을 차리고 다시 바라보니 웹툰은 나의 전부가 아니었다. 삶의 이유 같은 것도 아니었다. 내 인생은 많은 요소로 이루어져 있다. 원하는 것이 있다고 그것만 보고 몰두하면, 계획대로 되지 않았을 때 더 꼬이고 멀리 돌아갈 수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목표에만 몰두하는 방식이 잘 맞는 사람들도 분명히 있겠지만, 나에게는 맞지 않는 방법이다. 하나에만 쏟아부을수록 '실패하면 어쩌지?' 하는 두려움이 커지고, 신체적으로나 정신적으로 건강하지 않다고 느낀다. 지금 할 수 있는 것에 최선을 다하는 것, 그것만으로도 삶이 존재하는 이유로 충분하다. 밥을 먹으면 바로 설거지를 하고, 설거지하면 방 청소를 이어서 한다. 아프면 병원에 가고, 가족의 생일이 다가오면 선물과 편지를 준비한다. 노래를 만들고 싶어져 음악 장비 살 돈을 모으고, 저녁을 먹고 운동하러 나간다. 블로그 글을 쓰고, 그림을 공부하다가 좋아하는 아이돌 콘텐츠를 몰아본다. 삶의 의미, 즉 꿈은 자기 계발서에서 말하는 것처럼 죽기 직전까지 노력해야만 이룰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삶을 살아가며 꿈을 포기하지 않고 꾸준히 노력하다 보니 자연스레 이루어져 있는 것일 수도 있다. 어쩌면 꿈은 맛있는 것을 먹는 행복과 같은 것일 수도 있다. 삶의 요소 중 하나일 뿐, 내 삶을 망쳐도 상관없을 만큼 중요한 것은 아니라는 뜻이다. 그래서 나는 우선순위에서 꿈을 내 아래에 두었다. 그렇다고 노력을 덜 한다는 뜻은 아니다. 복잡하게 고민하는 과정을 없애기 위해 몇 가지 조건을 정해 나만의 행동 알고리즘을 만들었다.
첫째, '내년부터 시작해야지', '조건이 충족되면 시작해야지'가 아니라 지금부터 시작한다.
둘째, 견디기 힘든 괴로움과 고난이 왔을 때, 그것으로 얻을 수 있는 기회와 성장에 주목한다.
셋, 전보다 조금이라도 나아지는 것을 중요하게 여긴다. 여전히 부족하더라도 조금이라도 나아졌다면 만족한다.
이런 식으로 자신만의 삶의 규칙이 생기는 것은 좋은 일이다. 그만큼 혼란스러움이 줄어들고, 안정적으로 나아갈 수 있다는 뜻이니까. 지금 나는 삶의 목표가 없지만 삶을 살아간다. 왜냐하면 삶의 존재 자체가 삶을 사는 이유이자 의미니까. 계획대로 움직이지 않는 나의 발자취 뒤에 무엇이 남을지 나는 무척 궁금하고 기대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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