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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작/에세이

헤르만 헤세 『싯다르타』 줄거리와 주제 : 미래가 불안해 남에게 내 인생의 정답을 묻고 싶을 때 읽으면 좋은 책

by 류선선 2025. 6. 21.

『싯다르타』 / 헤르만 헤세 (믿음사 세계문학전집 ⓒ민음사)

『싯다르타』를 펼치기까지

나는 주지화(主知化)가 강한 사람이다. 주지화란 감정, 본능, 욕망, 행동 등을 지식이나 이성으로 통제하고 설명하려는 경향을 말한다.
큰 감정의 파동이 밀려올 때 나는 그 감정에 빠져드는 대신, 한 발 떨어져 바라본다. 감정을 그대로 겪기보다는 분석하고 해석하려는 습관이 있다.

이런 성향 덕분에 자기 성찰, 통제력, 분석적 사고에는 강하지만, 그만큼 감정을 억누르거나 회피하는 경우도 많다.

누군가와 갈등이 생겼을 때도 나는 단순히 “싫다”는 감정만 느끼지 않는다.
“나는 그 사람 자체를 싫어한다기보단, 그의 특정 행동이 내 과거 트라우마를 건드려서 큰 감정 반응이 일어난 것 같아.”라며 자신을 분석하고, 원인을 찾아내려 한다.

사랑에 빠지는 순간에도 마찬가지다.
“내가 이 사람에게 끌리는 이유는 안정적 애착 스타일과 생물학적 호르몬 영향 때문인 것 같아.” 그저 설렘을 느끼기보다는 연구자처럼 나 자신을 관찰한다.

그런 자신에게 위화감을 느낄 때면 다시 정서적인 따뜻함과 감성을 가지려고 노력한다.
한 번은 “미디어를 통해 성적 끌림의 데이터를 쌓으면서 사람들이 말하는 감정을 이해하게 됐다”는 말을 하자, 친구가 “무슨 AI냐”며 웃은 적도 있다.
하지만 실제로 나는 그렇게 로봇 같은 사람이 아니다. 다만, 그렇게 되기까지는 꽤 긴 과정이 있었다.

20대 초반, 진로도 불안정하고 마음도 혼란스러웠던 시절. 나는 전문가의 도움을 받아보고 싶을 만큼 흔들리고 있었고, 무작정 책을 읽기 시작했다.
좋은 습관을 만드는 법, 한국 사회가 심어주는 완벽주의, 안정형 애착의 중요성, 성장 마인드 셋…
그 시기 읽었던 책들이 지금의 나를 이루는 가치관에 크게 기여했다. 지식을 통해 내면의 문제를 푸는 법이 보이기 시작했고, 사람을 대할 때도 전보다 더 정교한 지표가 생긴 느낌이었다.

그렇게 나는 문제에 부딪힐 때마다 책을 찾았다. 책이 주는 조언으로 삶이 명확해지고, 실질적인 변화가 일어나는 것이 너무나 뿌듯했다.


20대 초반 나에게 큰 반향을 준 작품. 실패해도 괜찮으니 웹툰을 그려야겠다는 마음을 먹게 해줬다.
당시 내 책상 위 책들과 일기장들. 자기 성찰에 목마를 때였다.
웹툰에 도움이 될만한 정보를 촬영해 비공개 인스타 스토리로 올렸다.




하지만 어느 시점부터, 더 이상 책을 읽는 것이 크게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감각이 들기 시작했다. 그건 내가 모든 지식을 다 섭렵했다는 뜻이 아니다.
더 이상 해결하고 싶은 문제가 별로 없고, 그 문제를 다룬 책들 대부분이 거의 비슷한 말을 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요즘 누군가 다독가라며 나를 칭찬하면 약간 머쓱하다.
사실 최근엔 책을 많이 읽지 않은지 꽤 되었다.

예전에는 나의 욕망과 내면의 문제가 너무 많아서 책을 나침반 삼아 걸어가는 여정이 즐거웠다.
책은 내게 방향을 알려주었고, 그 방향이 실제로 내 삶을 바꾸는 걸 보며 감동했다.
마치 혼란스러운 어린 시절 만났던 똑똑한 데미안을 닮고 싶다 생각한 싱클레어처럼. 나는 책과 함께하면 외롭지 않았고 늘 의지할 수 있었다.

그런데 지금은 그런 책을 만나기가 어렵다. 대단한 책을 만나더라도 지금의 내가 과연 흥미로워할지 모르겠다.
그렇게 오늘을 열심히 살면 된다며 의욕을 내던 어느 날, 나는 헤르만 헤세의 『싯다르타』를 만났다.



『싯다르타』 줄거리

이 소설의 배경은 석가모니(부처)가 살던 고대 인도다. 하지만 주인공 싯다르타는 우리가 아는 석가모니와는 다른 인물이다. 그는 브라만(사제 계급)의 아들로 태어나 지혜롭고 아름다운 청년으로 자라난다. 그러나 전통적인 종교와 수행으로는 만족할 수 없는 갈증이 있었다. 그래서 그는 친구 고빈다와 함께 사문(수행자)의 길을 걷기 시작한다.

싯다르타는 부처를 만나지만, 그의 가르침조차 자신에게 완전한 해답은 아니라고 느낀다. 그는 직접 삶을 살아보는 것이 진리를 깨닫는 길이라 믿고, 수행자의 삶을 떠나 세속으로 들어간다. 그곳에서 카말라라는 여인을 통해 사랑과 욕망을 배우고, 상인 카마스와미에게서 돈과 성공을 익힌다. 그는 점점 풍요 속에서 허무를 느끼게 되고, 결국 모든 것을 버리고 강가에서 새 삶을 시작한다.

강에서 만난 뱃사공 바수데바는 말보다 경청과 침묵, 자연의 흐름을 통해 삶의 지혜를 전한다. 싯다르타는 강이 모든 것을 품고 흘려보내듯, 삶도 그런 것임을 깨닫는다. 그렇게 그는 마침내 ‘앎’이 아닌 ‘존재’의 진리를 몸으로 이해하게 된다.


『싯다르타』주제

삶은 배움이 아닌 ‘경험’으로 완성된다.


헤세가 말하고자 하는 핵심은 단순하다. 진리는 책이나 교리, 남의 말에서 얻어지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 겪고 느끼는 삶 안에 있다는 것. 부처의 말도, 스승의 가르침도 중요하지만, 그것이 곧 깨달음은 아니다. 사람은 직접 길을 걸어야 한다.

또 하나의 중요한 주제는 이분법을 넘어서려는 태도다. 금욕과 향락, 신성함과 속됨, 고통과 기쁨이 따로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모든 것이 연결돼 있고 흘러가는 것임을 받아들이는 것. 삶을 선악으로 나누기보다, 전체로 느끼고 품는 태도가 결국 우리를 자유롭게 만든다.



『싯다르타』가 주는 교훈

내 인생의 해답은 오직 나만이 찾을 수 있다.


이 책이 오래도록 사랑받는 이유는, 독자가 자기 자신을 투영할 수 있기 때문이다. 누구나 한 번쯤은 ‘지금 가는 길이 맞나?’ 하는 고민을 한다. 싯다르타도 수없이 방황하고, 실수하고, 심지어 삶을 버리려는 지경까지 간다. 하지만 그 모든 경험이 쌓여 결국 하나의 ‘깨달음’으로 이어진다.

결국 우리가 배울 수 있는 가장 중요한 교훈은 이거다.
남이 알려주는 정답을 따르기보다, 직접 부딪히고 느끼면서 나만의 길을 만들어야 한다.



작가가 하고 싶었던 말

헤세는 『싯다르타』를 통해 단순히 동양 철학이나 종교를 소개한 것이 아니다. 그는 자기 자신이 겪은 정신적 혼란과 자아 탐색의 여정을 소설 속 주인공에게 투영했다. 실제로 헤세는 자신이 직접 겪고 느낀 것이 더 많아야 소설을 계속 쓸 수 있다고 판단하여 『싯다르타』 집필을 그만두고 본인의 삶에 충실한 적이 있다. 그리고 이제 『싯다르타』를 완성할 수 있다는 생각이 들었을 때 다시 집필을 시작했다.

헤르만 헤세가 전하는 삶의 깨달음 이렇다.

불확실한 미래가 불안해 남을 통해 정답을 알고 싶은 너의 마음을 이해해.
하지만 네 인생의 정답은 오직 너만이 알 수 있어.
너만의 여정을 걷는 것을 두려워하지 마.




『싯다르타』를 읽고 느낀 점

나는 헤르만 헤세의 『데미안』을 무척 좋아한다. 그래서 그가 『데미안』 이후에 집필한 작품이 바로 『싯다르타』라는 사실이 내게는 무척 흥미롭게 다가왔다. 두 작품을 함께 놓고 보면 작가인 헤세 자신이 내면적으로 얼마나 성장했는지를 고스란히 느낄 수 있기 때문이다.

『데미안』의 주인공 싱클레어는 혼란스러운 시기를 통과하며 데미안이라는 분신을 지표 삼아 방황하고 자신을 찾아가려 한다. 반면 『싯다르타』의 주인공은 그보다 한 단계 더 나아가 삶 그 자체를 기꺼이 받아들이고 온몸으로 겪어내며, 자신만의 의미를 스스로 구축해 낸다. 나는 이 차이가 굉장히 인상 깊었다.

그 흐름 속에서 자연스럽게 나 자신도 투영했다.
20대 초반 불안정했던 나는 삶의 해답을 찾고 싶어서 수많은 책을 읽어 치웠다.
하지만 지금은 책 없이도 자신만의 기준으로 삶을 살아내려는 내가 있다.
과거의 내가 『데미안』 속 싱클레어에 가깝다면, 지금의 나는 조금은 『싯다르타』에 닮아 있는 것 같다는 생각도 든다.

나는 어릴 때부터 개인주의 성향이 강한 아이였다.
사회나 타인이 강요하는 메시지를 따르기보다 내가 원하는 것을 밀고 나가는 힘이 내 안에 있었다.
그래서 『싯다르타』에서 헤세가 전하려는 이야기에 더욱 공감할 수 있었던 것 같다.

실패하더라도 괜찮다고, 나는 실패할 권리가 충분히 있는 사람이라고 스스로 긍정할 수 있었다.
그런 태도는 나를 더 단단하게 만들었고, 지금의 나는 책을 찾지 않게 된 나 자신조차도 『싯다르타』의 시선으로 따뜻하게 받아들일 수 있다.

이제 나는 예전처럼 극적인 변화나 뚜렷한 성장의 경험을 자주 겪지는 않는다.
대신 책에 정답을 기대하기보다 삶을 살아내면서 작지만 분명한 효능감을 느끼는 사람이 되었다.
그 자체로 충분하다. 왜냐하면 삶에는 정답이 없으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