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년간 고립된 작업의 부작용
나는 한때 3년 동안 거의 사람을 만나지 않고, 오직 만화 작업에 몰두하며 지낸 적이 있다. 처음에는 몰입하는 즐거움이 컸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이상 신호가 찾아왔다. 사회성이 점점 줄어들었고, 남들과 대화하는 것이 어색해졌다. 생각이 깊어질수록 내 안에 갇히는 기분이 들었고, 멍하고 굳은 표정을 짓는 시간이 늘어났다.
당시 나는 정신건강을 주제로 한 만화를 그리고 있었고, 관련 공부를 하며 제1호 연구 대상으로 나 자신을 삼았다. 자신을 분석하는 일이 잦았다. 그러다 나는 이렇게 진단했다.
‘나는 점점 뇌가 굳어가고 있고, 간헐적으로 정신병적 상태가 찾아온다.’
(※이 결론은 정신과 진료를 통해 종합적으로 내린 것이므로, 부디 당신은 쉽게 자가 진단하지 않길 바란다.)
그때 처음으로 두려워졌다.
‘이러다 잃어버린 사회성과 건강을 다시 회복하지 못하면 어쩌지?’
그 순간 나는 고립에 대한 경각심을 가졌다.
작가는 고독을 사랑해야 한다.
유명한 격언이다. 창작은 본질적으로 고립된 작업이다. 그러나 인간의 뇌는 철저히 ‘사회적 동물’로 설계되어 있다. 신경과학 연구에 따르면 사람과의 교류가 줄어들면 전두엽과 측두엽, 특히 사회적 판단과 공감, 언어를 담당하는 영역의 활성도가 떨어진다. 쉽게 말해, 인간관계를 담당하는 뇌의 네트워크는 사용하지 않으면 퇴화한다.
실제로 장기간 사회적 고립은 우울, 사고 왜곡, 심지어 망상적 사고를 촉진할 위험 요인이 된다. 이 상태에서 아무리 현실을 인지하고 객관적으로 판단하려 해도, 이미 제 기능을 하지 않는 뇌를 ‘강박’이라는 이름으로 혹사할 뿐이다.
나는 이 사실을 몸소 경험했다. 내 세계에 몰입해 그림을 그리던 시간은 창작에 도움이 되었지만 동시에 나를 갉아먹었다. 홀로 생각에 잠기는 시간이 많아 우울함이 자주 찾아왔다.
그래서 결심했다.
다시 만화만 그리는 날이 오더라도, 나를 지킬 안전장치를 마련하자.
그 첫 번째는 주 2일이라도 사회에서 일을 하는 것.
두 번째는 하루 30분 이상 운동하며 뇌를 활성화하는 것.
세 번째는 내가 만든 규칙, ‘1인 창작 멘탈 세이프티 루틴’이다.
왜 이런 루틴이 필요한가?
창작자는 종종 이런 착각에 빠진다.
“현실보다 창작 세계가 더 진짜 같다.”
나도 그랬다. 만화 작업이 나를 갉아먹고 있다는 사실을 알면서도 그만두지 못했던 이유 중 하나는, 내가 만든 세계 때문이었다.
주인공의 삶은 오직 나만이 결말을 지을 수 있다. 그러니 멈춰선 안 된다.
그때 나는 그렇게 믿었다.
하지만 지금 생각하면, 창작 세계는 내 건강과 현실 앞에서는 있어도 없어도 되는 ‘사치재’였다. 창작물은 결국 현실의 토대 위에서 빛난다. 작가가 온전한 삶을 살아야, 그를 반영하는 창작 세계가 찬란해질 수 있다.
그리고 뇌는 우리가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쉽게 편향된다. 피드백 없는 고립은 생각을 강화하고, 강화된 생각은 때로는 위험해진다. 나는 그 위험을 똑똑히 느꼈다.
그래서 규칙을 세웠다.
현실과 연결될 것.
세상, 특히 타인과의 연결을 의도적으로 확보할 것.
핵심 키워드 (Keywords)
- 창작자 멘탈 관리
- 고립 예방 루틴
- 창작과 정신건강
- 뇌 과학 사회성
- 만화가 고립 증상
- 창작자 자기 관리
1인 창작자를 위한 멘탈 세이프티 루틴
✅ 1. 현실 리셋 질문 리스트
- 오늘 내가 한 대화 중에 사람과 한 게 있었나?
- 내가 믿는 생각을 다른 사람이 들으면 “논리적이다”라고 할까?
- 지금 내가 하는 얘기(그것이 긍정적이든 부정적이든)가 증거 없이 확신으로 가고 있진 않나?
- 창작에 취해 다른 사람들이 너무 평범하다고 생각하는가?
만화를 창작하던 시절, 나는 하루 종일 작품 생각만 했다. 아이디어를 떠올리다 보면 ‘이건 정말 기발해’, ‘남들이 상상도 못 할 발상’이라며 스스로에게 취했다. 지금 돌아보면 그것은 ‘나는 특별하다’라는 믿음으로 향하는 과정이었지만, 나는 남들보다 특별하지 않다.
하지만 살아있는 한 존재로서 소중한 가치가 있다. 가치는 누군가의 위에 서거나, 남보다 뛰어나야만 생기는 것이 아니다.
모든 사람은 엉망인 순간을 겪는다. 그리고 그 시련이 왜 내게 왔는지, 그 의미는 늘 훗날에야 깨닫는다. 나는 이렇게 말하고 싶다.
삶의 복잡함을 받아들이고, 그 안에서 환희를 찾는 것이 삶이 주어진 이유이다.
✅ 2. 고립 방지 규칙
- 최소 3일에 1번은 사람과 대화 (전화·카톡·밥)
- SNS나 커뮤니티에서 의견 수렴 (단, 피드백받을 때는 ‘사실 검증’ 위주)
- 한 주에 1번은 작업 외 활동 (산책, 카페, 전시 등)
✅ 3. 창작 몰입 브레이크 체크리스트
- 몸이 혹사될 정도로 몰입하고 있나? → 쉬어야 함
- 내 인생보다 창작이 더 중요하고 절실하게 느껴지는가? → 산책 or 사람과 대화
- 잠을 줄여가며 아이디어에 몰입하고 있는가? → 그 상태가 오래가면 사고 왜곡 시작됨
✅ 4. 안전신호 & 위험신호 구분
- 안전신호
✔️ 새로운 아이디어를 얻어도 “확인해야지”라는 생각이 든다.
✔️ 피드백을 거부하지 않는다.
✔️ 현실 일정을 지킬 수 있다.
- 위험신호
❗ “내가 유일한, 또는 특별한 사람”이라고 느낀다
❗ 상대방이 내 생각을 전부 ‘맞아요’라고 해주길 원한다
❗ 다른 사람에게 내 얘기를 설명할 자신이 없다
✅ 5. 비상 루틴 (위험신호 감지 시)
- 10분 동안 작업 중단 → 몸 움직이는 활동 (스트레칭, 샤워, 외출, 산책, 운동)
- 믿을 수 있는 사람에게 현재 생각을 말해보고 반응 확인 > 예시) “나 지금 이런 생각 중인데, 불건강한 건지 점검해 줘”
이 글을 보는 모든 1인 창작자에게
혹시 요즘 들어 예전 같지 않은 자신을 느끼거나, 고립된 삶이 서서히 자신을 갉아먹고 있다는 생각에 이 글을 읽고 있다면, 먼저 그대에게 격려의 말을 전하고 싶다.
자신의 상태를 인지하고 변화의 필요성을 느끼는 것은 이미 회복하고 있다는 증거이다. 그대는 반드시 다시 좋아질 것이다.
뇌는 가소성을 지닌다. 이는 뇌가 훈련과 노력에 따라 긍정적으로 바뀔 수 있다는 뜻이다. 지금 당장 변화가 보이지 않더라도, 부디 포기하지 말자. 매일이 아니어도 괜찮다. 이틀에 한 번, 일주일에 한 번이라도 꾸준히 시도하는 것이 결국 뇌에는 ‘계속하고 있다’라는 신호가 된다.
앞으로 남은 인생이 적어도 30년 이상이라고 생각해 보자. 그 시간 동안 그대는 충분히 좋은 방향으로 나아갈 수 있는 존재임을 절대 잊지 말자. 건강을 지키고, 소소한 행복을 느끼며, 자신이 사랑하는 창작 활동을 이어가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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